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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화랑도와 선비정신에 이어 군문화

기사승인 2019.08.13  08: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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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호당(翠湖堂) 최재문(崔在文)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국제계관주간)

문화라는 용어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힘들다. 한 사회의 주요한 행동 양식이나 상징적 구조가 문화(culture)이며, 한 사람의 개인이나 인간 집단이 자연을 변화 시켜온 물질적 정신적 과정의 산물이라 하겠다. 문화는 그것이 속한 담론의 맥락에 따라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는, 다(多) 담론적 개념이다. 즉 문화란 자연 상태의 사물에 인간의 작용을 가하여 그것을 변화 시키거나 새롭게 창조해낸 것을 의미한다.

문화에 대한 정의가 다양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일상생활의 전통과 관습, 믿음과 활동 등 총체적인 삶의 약식들을 지칭하는 것들이 포함된다. 문화는 역사적 시대, 사회집단, 이데올로기적 입장에 따라 다양하게 문화가 정의되어 왔다. 주로 정신적이거나 지적이고 예술적인 산물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회학이나 인류학에서는 흔히 문화를 인간의 상징체계, 혹은 생활양식으로 정의한다. 인간은 상징체계를 통해 사회를 경험하고 인식하며 다른 인간과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을 한다. 우리나라는 세게 유일의 분단국가이면서 갈등과 대립을 넘어 새로운 군 문화를 정립하고 궁극적 가치를 공유하고 세계평화에 기여하고자 함은 우리시대 대다수 지식인들의 견해다.

이러한 군문화를 논하면서 신라의 화랑도 문화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원광법사(圓光法師)가 제정한 ‘세속오계(世俗五戒)’와 최치원(崔致遠) 선생의 ‘난랑비서(鸞郞碑序)’가 있다. 세속오계는 충(忠;事君以忠)·효(孝;事親以孝)·신(信;交友以信)·용(勇;臨戰無退)·인(仁;殺生有擇)의 5계를 규정하고, 특히 이들이 소중하게 여긴 덕목은 충과 효와 신의이며, 난랑비서 에서는, 신라 고유의 이념인 풍류도와 화랑도 정신의 가르침을 받들어 수련하였다, 자유스러움과 호방함을 보여주는 선풍(仙風)과 유교·불교·도교의 3교를 포괄하여 이루어진 풍류도가 화랑의 기풍과 정신세계의 한 바탕이 되어 문화로 정착 되었다.

집안에 들어와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공자(孔子)의 가르침과 같고, 무위(無爲)로써 세상일을 처리하고, 말 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노자(老子)의 근본 사상과 같고,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석가(釋迦)의 교화와 같았다. 이러한 문화가 우리민족 내부 정신문화로 면면히 전례 되어 세조 13년 남이 장군의 북정가(北征歌)나 이순신 장군의 우국충정 백의종군(白衣從軍) 또는 진충보국(盡忠報國) 정신으로 이어져 우리의 주된 군인정신이 되었다.

한국인의 평등사상은 주로 군에서 길러졌다. 잘 살든 못 살든 많이 배웠든 일자무식이든, 사대육신이 멀쩡하면 군에는 누구나 가야했다. 똑같은 제복에 똑같은 밥을 먹으며 같은 내무반, 훈련장에서 같이 기합을 받고 훈련장에서 고락을 같이한 동지적 유대 관계를 형성했다. 군 생활을 통해 엄격한 규율, 상명하복에 길들여진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단결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산업 현장에 풍부한 노동력을 제공했다. 군에서 배운 기술이 생산 현장에서 응용되었다. 군사 문화는 지시와 복종, 근면성, 목표 지향적 사고, 단결의식, 인내력, 도전의식, 평등의식 등은 산업화의 밑거름이 되었다.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는 말이 있다. 6.25 직후에는 군에 가서 처음 전깃불을 보았고 전화도 처음 쓰게 되었다. 육군 병장 마치고 돌아오면 성숙한 사람이 되어 리더십도 생기고 사회생활에 자신이 붙었다. 70년대 관공서의 행정이 군보다 상대적으로 뒤 떨어져 있었다. 역기능보다 순기능이, 그리고 밝은 쪽으로 개선이 되면서 군사문화는 도전과 성취의 화신이 되어 용감하고 정의로운 남자라는 덕목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의 분단 현실과 군문화는 군대의 존재와 함의 부여를 정당화하는 것을 이데올로기에서 찾을 수 있다. 국가안보 제일주의가 군대의 가치와 관행이 일반 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군의 특성상 효율적인 조직 운영과 관리를 위해 위계와 통제와 훈련이 핵심이라고 믿고, 병영 생활을 위해 필요한 남성성에 가치를 부여하고 집단 훈련, 집단 군기 잡기, 명령 하달의 계급사회를 정당화함으로써 저변에 깔려있는 가치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문화로 형성되었다. 따라서 왕권을 강화시킬 목적으로 유교에 기반한 충효사상에 길들여진 가부장적 전통문화에 가치를 둔 사회였는데, 냉전시대 이데올로기에 의한 군사문화가 혼재되어 조화를 이루면서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문화로 자연스럽게 형성 되었다.

분단은 군사적 대립의 일상화를 의미한다. DMZ는 교류와 왕래를 끊고 민족 분단의 장벽은 한강 어귀의 교동도에서부터 개성 남쪽의 판문점을 지나 중부지역의 철원 김화를 거쳐 강원도 고성군의 명호리에 이르는 총연장 248km로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곳으로 군사행위 및 적대행위를 일체 중지하는 완충 지대를 '비무장지대 (DMZ)'라 한다. 따라서 이념은 군사주의에 대해 남한과 북한은 이데올로기에 의한 적대적 공범자가 되어 왔다.

상명하복 문화, 그리고 획일 문화 등과 많은 병폐, 관행들을 우리사회는 너무 쉽게 받아 들였다. 대학사회에서 나타나는 선후배 사이의 문화도 그렇고, 학교를 갓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고참 졸병 따지는 군문화이다. 군사문화가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군 생활이 감정지수를 키우는 데 기여하고, 사실상 부모와 가족 그리고 애인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함께 애국심이 커지는 곳이 군이다. 동시에 국토방위와 국가를 지킨다는 자긍심을 가져보는 곳도 군대다. 이런 감정이 사람 되게 하고 대한민국 국민임을 느껴보게 하는 곳도 군이며 군사문화로 정착해 왔다. 유교적 충의 기치는 국가에 대한 충성의 개념으로 바뀌고 가부장적 가족 질서를 대변하는 효의 가치 역시 충효라는 등식으로 여전히 가치로 작용했다. 남북분단과 함께 충효의 이데올로기는 반공 이념과 결합하면서 국가의 수직적 권력 체계로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했다.

우리사회는 너무나 군문화의 비합리적 모습과 닮아 있다. 폭력적이고 강압적이면 “여기가 무슨 군대냐”, “군기 잡기다” 식의 표현과 현상은 결국 우리사회에 배어 있는 비이성적이고 전체주의적인 군문화가 파시즘 또는 극우 보수주의자들의 생존 기반이 되고 있음을 우리는 직시해야 된다. 때문에 비합리적 비이성적 군문화를 청산해야 할 것이다.

분단 70년이 다가오도록 아직도 통일을 이루어 내지 못한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인 우리, 더 이상 분단이 아닌 조국 평화통일의 염원을 담는 2020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야말로 시의적절한 행사다.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문화를 창조하는 문학이다. 따라서 무관심한 상실의 시대에 통일에 대한 의식을 높이기도 하고, 평화와 통일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목소리와 우리 삶 곳곳에 있는 분단의 아픔을 살피는 시적(詩的)인 밝은 눈을 가지고 있다. 이의 경험과 상상을 더하고 이상적 철학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 문화 기저에는 신라의 세속오계와 화랑정신이 면면히 흐르고 선비정신이 기저에 깔려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 민족의 주된 정신은 선비정신이다. 선비정신이야말로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랑스러운 정신문화라 하겠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戍樓)에 홀로 앉아/큰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笳)는 나의 애를 끊나니-.

군인은 모두가 이순신 장군의 마음과 같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

계룡일보 gdnews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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