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민 논산계룡교육지원청 학폭심의위원장

최영민 논산계룡교육지원청 학폭심의위원장
최영민 논산계룡교육지원청 학폭심의위원장

올해 초 세운 계획 중 하나는 고전을 매일 한 문장씩 읽고 쓰는 것이다. 매일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실천하고 있으니 작심삼일은 면했다. 아마도 3일, 세 번은 꾸준함, 인내, 허용의 임계점이 아닌가 싶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도 삼진아웃이면 타석에서 물어나야 하고, 가위바위보도 세 번은 해야 누가 이겼는지 판결이 나니, 세 번은 희노애락의 숫자 같다.

<논어>를 읽다보면 공자는 세 번, 세 가지를 참 좋아한다. 매일 자신에게 묻는 세 가지 질문(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나, 주변사람들과 신뢰로 교류하였나, 오늘 전해들은 공부를 완전히 습득했나)으로 하루를 살고, 유익한 즐거움과 손해나는 즐거움도 세 가지씩 정리했다. 이 중 내게 와 닿은 유익한 즐거움 한 가지는 현명한 친구들과 인생을 사는 것이다. 현명한 친구는 곧 사우(師友)이니 이 보다 더 즐거운 삶이 어디 있을까 싶다. 공자의 숫자 3, 세 가지에 대한 애정의 백미는 역시 “세 사람이 함께 걸어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으니 선한 자를 택하여 본받을 것이고, 선하지 못한 자는 내 잘못을 고치는 계기로 삼는다.”라는 말씀이다. 이런 놀라운 성찰력이 있으니 2500년이 지나도 사람들은 공자를 편애할 수밖에.

옛이야기, 문학에도 세 가지는 단골 소재다. 몇 해 전 내 마음을 흔들었던 박노해 시 <3단>은 너무 좋아서 그 해 1년을 ‘이렇게 살아야지’ 생각하고 책상 앞에 시를 오래 붙여놓고 훈령처럼 읽고 또 읽었다. ‘3단’이란 ‘단순한가, 단단한가, 단아한가’ 세 가지인데, 시인은 물건을 살 때, 일을 할 때, 사람을 볼 때 ‘3단’을 생각한다. 덕분에 나도 그 해는 물건을 야무지게 고른 것 같다. 만약 ‘3단’이 아니고 4단이었으면 어땠을까?

나이 일흔이 넘은 소설가 톨스토이도 ‘세 가지 질문’(가장 중요한 때, 가장 중요한 사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을 던져줬다. 정답은 이미 아시겠지만 가장 중요한 때란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내 곁에 있는 사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은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정답은 뻔해도 그 뻔한 것을 실천하며 사는 삶은 뻔하지 않다. 진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고, 세 번은 묻고 대답하는 과정을 거쳐야 뻔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갈등과 폭력으로 심신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만나는 내 정체성은 퍼실리테이터다. 공감적 경청과 질문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항상 대화의 자리에 나가기 전에 어떤 질문을 할까 준비한다. 만나면 사람들의 대답과 심경을 듣고 상대방이 놓치고 있는 것을 찾아서 질문하려고 노력한다. 박영준은『혁신가의 질문』에서 질문의 등급을 하수, 중수, 고수 세 단계로 구분했는데 “하수는 사실과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질문하고, 중수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 고수는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을 이끌어내기 위해 질문”한다고 한다. 질문은 언제나 숫자 3, 세 가지 성찰 루틴(routine)이 적용되기 좋은 분야다.

수피격언에도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 통과해야하는 세 개의 문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 문은 말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인데, 첫 번째 문은 ‘진실인가’ 두 번째 문은 ‘필요한가’ 세 번째 문은 ‘친절한가’ 묻는 것이다. 만약 누구나 세 번의 문을 통과한 말만 할 수 있는 나라에서 산다면 세상은 천국일까?

요즘 재미나게 읽고 있는 김경미 시집 『카프카식 이별』에 수록된 시 <세 켤레의 짐>에서 시인은 짐을 신발에 비유해 “가벼워서 좋은 짐, 무거워서 좋은 짐, 무게가 다른 짐” 세 가지 짐을 아끼는 짐이라고 했다. 짐은 부담스러운 존재로만 생각했었는데 시인이 아끼는 세 가지 짐 덕분에 인생이 들뜨지 않고 묵직해져 좋다.

삶에 가득한 삼세번, 생각하고 질문하고 때론 침묵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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