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창 박성환, 이달 26일 오후 7시 30분 대전시립연정국악원서 공연

 
 

판소리계의 정격연주 중고제 판소리의 정통을 이어받아 소리의 길을 꿋꿋이 지켜나가고 있는 명창 박성환의 중고제 판소리 ‘적벽가 이동백제’ 가 5월 26일 오후 7시30분 대전시립연정국악원 작은마당에서 펼쳐진다.

2021년 중고제 적벽가 완창을 5회째 이어 온 명창 박성환은 국립창극단에서 활동했으며 중고제의 시조 김성옥으로부터 시작하여 김정근-이동백-정광수-박성환으로 이어져오는 정통 중고제를 계승하고 있다. 가족 모르게 소리의 길을 뒤늦게 시작했지만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이수자로, 중고제 판소리 계승자로 의미 있는 길을 묵묵히 가고 있는 명창 박성환을 만나 본다.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충청도에서 태어나 충청도에서 자랐으며 서울에서 대학 졸업 후 국립창극단에 들어가 소리꾼, 배우, 창작자로 활동하다가 중고제 판소리를 쫒아 스승께 공부를 한 이후 계룡산 자락에 귀향하여 중고제 판소리를 하고 있는 박성환입니다.

국악을 하게 된 계기는

어려서부터 라디오를 통해 늘 국악 방송을 들으시는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전통음악을 좋아하셔서 항상 단파 라디오를 가지고 다니시면서 논에서든 밭에서든 채널을 맞춰 가며 국악방송을 들으셨다. 부모님은 당신들이 힘겹게 농사를 하면서 전력을 다해 우리를 키웠기 때문에 저희들은 펜대 굴리면서 지식인으로 살기를 원하셨고 음악에 관심 쏟는 것을 싫어하셨다. 그래서 처음에는 음악이 아닌 인문학 쪽으로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했고 입학 하자마자 사물놀이부터 배우며 점점 더 국악 매력에 빠져들었다. 군 제대 후 가방하나 메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지인의 소개를 받아 지리산 남원 동편제 마지막 수장이신 강도근 선생님께 가서 공부했다. 거의 1년을 가족 모르게 공부하다가 이후 가족들에게 알리게 됐다.

중고제 판소리의 시원은

중고제는 한자로 가운데 중(中)자에 옛 고(古)자를 써, 중간 옛날제라는 뜻이다. 판소리는 지금으로부터 250년 300년 전에 생겼다고 하는데 홍성지역의 최선달, 최예은 명창에 의해 비롯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흔히 판소리는 호남을 중심으로 생각하는데 문헌자료나 명창들의 거주지를 살펴보면 선대에 올라갈수록 충남도와 경기도 남부지역에 명창들이 몰려 있다. 그래서 중고제는 최선달 이후로 염계달(경기도 여주 또는 충남도 예산군 덕산면)과 금강 줄기 강경의 김성옥의 법제를 따른다 이렇게 되어 있다. 최초의 명창인 최선달 이후로 염계달 김성옥에 의해 하나의 유파가 생겨난 것으로 보는데 유파가 생겼다는 건 흐름 즉 일정한 스타일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개별적으로 일어나서 점점 형성기를 거치다가 하나의 유행이 되면서 하나의 스타일이 대중 속에 뿌리박히게 되는 문화현상, 이것이 중고제의 정립이라고 보고 있다. 중고제 이후에 김성옥의 처남 송흥록이 남원 운봉으로 가서 만든 소리가 동편제가 되고 그후 전남 보성 박유전이라는 분이 만든 소리가 서편제가 됐다.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현대에 오면서 현대적으로 변화하는데 중고제는 바로 충남도를 중심으로 판소리의 가장 오래된 스타일이고 그 유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귀한 소리라고 볼 수 있다. 우리민족 전체의 자산이기도 하지만 지역적 자산이기도 하다.

중고제 판소리를 더 자세히 소개한다면

중고제는 막 시작하는 단계에서 성장기에 있는 소리다 보니까 동편제나 서편제에 비해 소리의 구성이나 짜임새가 느슨하다. 치장이나 꾸밈이 적고 단순하고 전체 맥락을 봐야 보이는, 다르게 표현하면 투박하고 밋밋하다 거칠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고 세련된 맛이 적다. 또, 균형이나 비례가 잘 맞지 않다 볼 수도 있다. 음악적인 구성으로 봤을 때 정제된 치밀한 기교나 화려함과는 멀다. 소리가 현대로 올수록 발성도 가벼워지고 치장이 심해지고 꾸밈 음에 대한 발달이 심해지고 발성이 약해지는 대신에 듣기엔 더 좋고 부드럽고 화려한 측면이 강조된다. 중고제로 갈수록 강직하고 고졸하고 담백한 특징이 있다. 내용에 있어서도 큰 맥락은 같지만 중고제는 다른 사설에 비해 내용이 독창적이고 독특하게 되어 있다.

중고제 판소리 관련 자료는

음반자료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취입을 시킨 이동백이나 김창룡 같은 당대 중고제 대명창들이 녹음을 남긴 것은 있다. 그 녹음에 춘향가나 심청가가 있고. 수궁가도 약간 있고 흥보가는 발견이 안됐으며, 적벽가는 있다. 그것을 들어보면 지금 소리하고는 많은 차이가 느껴진다. 지금소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다르다. 음악적 미학과 분석력 등 심미안이 있는 사람이 보면 이렇게도 할 수 있다니 하고 감탄한다. 그런 측면에서 놓기는 아쉬운 소리이다. 제가 이번에 공연하는 적벽가도 절반 넘게, 후반부는 음반을 가지고 연구하고 음반을 복원했다.

왜냐하면 저희 스승이 이동백 선생께 배운 부분이 적벽가 앞부분이다. 그래서 뒷부분이 없다. 흔히 뒷부분은 동편제 적벽가를 부르고 저도 그렇게 불렀는데 중고제로 한판을 다 엮어 보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일제강점기 음반에서 이동백과 김창룡의 소리를 연구해서 이어서 완창을 하고 있다.

국립창극단 활동 중 지향점은

국립창극단에 있으면서 제가 창작에 관심을 가진 것은 기존에 해 왔던 것에 대한 적극적 비판 , 적극적인 자기 성찰 이런 과정이었다. 전통5바탕에 대해서는 윤색하거나 각색해서 새롭게 만들어 보았고 창극의 경우 우리의 판소리 어법에 뮤지컬이나 오페라처럼 극적인 양상을 띠는 장르이니까 현대인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컴템포러리 창극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일찍부터 갖고 있었다. 그래서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섹스피어 작품 등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가지고 직접 창작과 연출을 하기도 했다. 작년에는 공주 백제문화제에서 ‘공산성 달 밝은 밤에’ 주제 의 공연을 국악 뮤지컬로 만들어 선보여 호응을 얻었다. 그렇게 우리가 하는 국악에서 대중들과의 접점을 찾고 즐기고 싶다.

국악 꿈나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저는 앞으로 판소리를 공부할 친구들에게 기존에 해 왔던 판소리의 교본을 철저하게 따라 주고 전통적인 어법을 충분히 익힐 것을 얘기해 주고 싶다. 충분히 농익은 다음에 어른이 되어서 다른 것을 해도 된다고 얘기하고 싶다. 저는 판소리가 좀 더 올곧게 클 수 있는 토양이 생기고 판소리를 좀 더 온전하게 원활하게 충분하게 배워 줬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다.

중고제판소리를 전수받게 된 사연은

국립창극단 시절 고음반 연구회에 들어가서 고음반 연구를 했다. 고음반을 들어보니까 이동백 김창룡 명창의 중고제 소리가 나오는데 보니 이분들이 충청도 사람이다. 제가 충청도 사람이다 보니 귀가 쫑긋해서 더 관심이 갔고, 그러다가 저도 중고제는 끊긴 줄 알았는데 정광수 선생께서 살아계시고 중고제를 하고 계시다는 얘기를 듣고 일부러 찾아갔다. 정광수 명창은 인간문화재 생길 때 처음으로 인간문화재가 되신 분이다. 동편제 수궁가로 인간문화제가 되셨다. 다만 1930년대 이동백 선생님한테 중고제 적벽가를 배웠다고 해서 제가 찾아뵙고 배웠는데 스승님을 만나 뵐 때 90세였는데 삼고초려 해서 세 번째 만에 허락을 받고 공부했다. 1999년, 2000년 그때에 적벽가를 배우고 스승님은 2003년에 돌아가셨다. 스승님 돌아가시기 전 3년간 안방 건넌방에 살면서 모시고 있었다. 저한테 소리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시고 소리의 문리, 소리의 원리에 눈을 뜨게 해주신 분이 정광수 선생이시고 무엇보다 저의 태 자리가 있는 충청도의 고유한 문화유산 중고제를 직접 가르쳐 주시고, 교육해 주신 분이 정광수 선생님이시기 때문에 그 스승님의 영향이 가장 크고 우리 소리 중고제의 우리 소리의 원리 창법 소리를 해나가는 방식에 대한 직접적인 훈도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 다행스런 일이고 크나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 또는 바라는 점이 있다면

연정국악원 초청으로 5월 26일 대전시립연정국악원에서 적벽가 공연을 하고, 6월 9일 동대문구 광무대라는 극장 초청공연으로 적벽가 중고제 판소리 공연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중고제는 일제강점기 때 끝난 걸로 생각한다. 워낙 유명했던 이동백 김창룡 명창이 1940년대에 돌아가시고 나서 사람들이 더 이상은 중고제를 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동백 명창 저의 스승이신 정광수 명창, 그리고 저한테 이어진 적벽가가 있으니까 저는 열심히 공연하면서 중고제가 아직 살아있다는 걸 널리 알리고 싶다. 많은 분들이 중고제에 관심을 갖고 지원도 해줬으면 좋겠고 정책적으로도 이걸 육성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주시면 좋겠다. 중고제야말로 충청도의 자산이다. 정책적으로 발굴 육성하고 계승해 나가는 정책적 뒷받침이 있으면 참 좋겠다.

/최성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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